[매일경제] 아버지 수업

아버지센터
2017-04-21 17:39:20




로고






[매경춘추] 아버지 수업



입력 : 2017.04.20 18:04:04




'라이언 킹' 수사자는 초원의 지배자로 무리 위에 군림한다. 사냥해 온 먹이는 그가 먼저 배를 채운 뒤에야 식구들이 먹을 수 있다. 하지만 늙어 기력이 쇠하면 처지는 급변한다. 젊은 사자들에게 밀려난 늙은 수사자는 홀로 초원을 떠돌다 쓸쓸히 생을 마감한다.

떠돌이 늙은 수사자는 아프리카 초원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킬리만자로의 표범'이라는 노래가 유행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 많은 아버지는 노래방에서 절규하듯 '먹이를 찾아 눈 덮인 산 정상에 오르는 표범'을 부르며 자신과 동일시하곤 했다. 바람처럼 길을 떠나는 것은 그 시대 아버지들의 로망이자 서글픈 초상이기도 했다. 어머니들이 온 가족이 흘러드는 강이라면 아버지들은 외롭게 힘든 일상을 꾸려 가는 눈 덮인 킬리만자로의 표범 같은 존재였다.

시대가 바뀌어 이제 사자같이 엄한 가부장이 설 땅은 좁아졌다. 5월 가정의 달이 다가오지만 아버지들은 점점 말이 없어지고 가족 간 대화에서도 소외된다.

어느 통계에서 보니 고민거리가 생겼을 때 아버지와 의논하겠다는 청소년은 4%에 불과했다. 또 고교생 다섯 명 중 한 명은 아버지와 하루에 1분도 대화하지 않는다는 통계도 있었다. 있는 듯 없는 듯 무의미한 존재로 밀려난 아버지들은 늙은 수사자처럼 가정 밖을 떠돌고 있다.

시대가 요구하는 아버지상이 바뀌었다면 아버지들도 변화해야 한다. '아버지 없는 사회'라는 글에서 이어령 선생은 "어머니는 자연적 존재이지만 아버지는 사회적으로 창조된 존재"라고 말한다. 아버지는 저절로 되는 게 아니라 사회 환경 속에서 만들어진다는 뜻이다.

이제는 사회가 나서서 이 시대에 어울리는 아버지가 되는 법을 가르치고 배우게 해야 한다. 서초구는 시대적 요구에 맞춰 지난해 전국 자치단체 최초로 '아버지센터'를 설립했다. 아침편지문화재단의 고도원 씨가 운영을 맡은 '아버지센터'는 아버지들이 자기 자리를 찾아갈 수 있도록 돕고 있다. 홈 베이커링, 실내 가드닝, 아이를 위한 감정 코칭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아버지들은 가족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법을 배운다.

가장 인기 있는 프로그램은 단연 '아빠는 최고 요리사'다. 아내가 밥상 차려 주기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 스스로 차리고 아이에게도 기쁨을 선사하는 맛깔스러운 아버지 수업이다. 수강 신청이 한두 달씩 밀릴 정도로 반응이 뜨겁다.

행복은 식탁에서 나온다고 한다. 가족을 위해 식탁을 차릴 줄 아는 멋있는 남편과 친구 같은 아버지야말로 우리 시대의 진정한 '라이언 킹'이다.

[조은희 서초구청장]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